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 매카트니 (문단 편집) === 가족 === 아버지 제임스 매카트니는 [[트럼펫]]과 [[피아노]]를 연주하였는데, 이는 어린시절 폴 매카트니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어머니 메리 매카트니[* 폴이 밝힌 바로는 '[[Let It Be(노래)]]'에 등장하는 'mother mary'는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어머니를 뜻한거였다고.]는 [[간호사]]였는데, 폴 매카트니가 15살이 되던 해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뜨게 된다. 이는 역시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존 레논]]과 유대를 쌓게 되는 계기가 된다. 형제 관계로는 동생 마이클 매카트니가 있다.[* 마이클이 어린시절 뒤뜰에서 기타를 치던 폴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폴 매카트니의 [[Chaos and Creation in the Backyard]] 앨범의 표지가 되기도 하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aul and jane.jpg|width=100%]]}}} || || 영국의 하이틴 스타 제인 애셔와 함께 || [[비틀즈]] 시절 폴은 영국의 하이틴 스타이자 여배우[* 11살에 [[아역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대표작으로는 [[알피]], [[딥 엔드]]가 있다.]인 제인 애셔와 동거 관계였다. 화이트 앨범 이전에 쓴 폴의 러브송은 본래 제인 애셔를 위해 쓴 곡들이었다. [[1964년]] 둘은 제인 애셔의 집에서 동거생활을 시작했으나 이들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았다. 1965년, 한창 [[비틀즈]]가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10대 시절부터 [[영국]]에서 인기가 높은 배우였던 제인이[* 심지어 비틀즈의 무명시절에는 제인 애셔가 오히려 비틀즈보다 인기가 높았다. 폴과 제인이 첫 만남을 가진 계기도 [[1963년]] [[4월 18일]], 방영된 영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리포터로 출연한 17살의 제인이 비틀즈와 인터뷰를 한 것이었다.] [[비틀즈]]와 폴의 인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충실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폴이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기도 했다. 참고로 제인은 폴이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핀다는 사실을 듣자 폴이 둘 사이의 관계를 [[오픈 릴레이션십]]으로 여긴다고 받아들여서 자신도 같은 연극에 출연 중이던 동료 남배우와 맞바람을 폈다고 한다. 그래도 [[1966년]] [[비틀즈]]가 [[투어]]를 중단하자 폴과 제인은 시골에 별장을 구입해서 재결합하고, [[1967년]] [[크리스마스]]에는 결혼을 발표했다. 그러나 돈은 자신이 벌테니 결혼 후에는 배우일을 은퇴하고 가정에 충실해달라는 폴의 부탁을 자신의 일에 무척 자부심이 컸고, 폴의 상태도 [[대마초]]와 [[LSD]]에 중독되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제인이 거절하면서 둘의 관계는 최종적으로 끝이 났다. 이후 폴은 제인이 여행을 다녀온 틈을 타서 그녀와 같이 살고 있던 집에 다른 여자들을 데려오기 시작했고, 결국 폴 매카트니가 [[시나리오 작가]]인 프랜시스 슈와츠와 한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을 제인이 목격한 것을 계기로 [[1968년]] [[7월 20일]]에 제인 애셔가 공식적으로 폴과의 약혼을 파기한다. 제인 애셔는 훗날의 인터뷰에서 "나는 늘 존과 폴 두 사람의 정신적인 교감을 질투했었다. 게다가 당시 [[비틀즈]]의 멤버들이 LSD 트립 체험 등 최신 트랜드를 접할때 나는 늘 배제되어 있었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이에 폴 매카트니는 "제인 애셔는 늘 그녀의 일과 인기에만 신경썼을 뿐 자신이나 [[비틀즈]]에 큰 관심을 두고있지 않았다."라며 응수했다. 폴과 헤어진 후 제인 애셔는 [[1971년]]부터 영국의 [[만화가]] 겸 [[디자이너]]인 제럴드 스카프[*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커버 작업으로 유명하다.]와 사귀기 시작했고 연인이 된 지 10년만인 [[1981년]]에 그와 결혼했으며 2023년 현재까지 몇 십년간 이혼하지 않고 잉꼬부부로 잘 지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제인 애셔에게 폴 매카트니에 대한 질문을 묻는건 실례라고 한다. 실제 2004년 인터뷰에서 인터뷰어가 폴 매카트니에 대한 질문을 하자 제인 애셔는 "나에게는 이미 몇 십년을 해로한 남편이 있는데, 뭔 소리냐. 지금 날 모욕하는 거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파일:external/wp.clicrbs.com.br/paul-mccartney-wedding-linda-eastman-pic-mirrorpix-840037306.jpg]] 폴 매카트니는 1969년 3월 12일 사진작가 [[린다 매카트니|린다 이스트먼]]과 결혼한다. 린다는 유명 록밴드와 동행하며 그들의 모습을 담는 사진작가였는데, 런던에서 활동하던 록밴드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1967년 영국에 왔고, 비틀즈와 알게되었다. 폴의 회고에 따르면 서로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당시 린다는 6살된 딸을 한명을 둔 이혼녀였는데, 폴은 딸 '헤더 루이즈'를 정식으로 입양하였다. 헤더는 지질학자인 친아버지 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폴 역시도 자신의 아버지로 생각한다고 밝혔으며 도공으로 활동하고 있다. [[파일:external/www.billboard.com/1281299-paul-linda-mccartney-617.jpg]] 린다는 폴의 뮤즈로써, 폴은 린다와 윙스활동까지 같이하며 어디든지 함께 하였다. 폴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뮤지션'으로써 린다의 평가는 매우 좋지 않았다.[* 다만 이는 어쩔 수 없었던 게, 린다는 본래 사진작가였고, 세계 최고의 싱어송라이터가 옆에 있으니...] 그러나 애초에 밴드에 그녀를 부른 이유는 그녀가 좋은 뮤지션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함께 하고 싶었던 이유였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신경쓰지 않았던 듯 하다. [[파일:external/www.abril.com.br/paul-mccartney-linda-05g.jpg]] 그러나 린다는 유방암으로 인해 투병생활을 지속하던 중 1998년 4월 17일 5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의 사망으로 폴은 큰 슬픔에 빠졌으며, 후에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암 치료제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2014년 11월 6일부터 2015년 4월 26일까지 서울 대림 미술관에서 린다 매카트니의 사진전이 열렸다. [[파일:external/img.thesun.co.uk/Macca_wenn1_532_1424023a.jpg]] 린다와의 사이에서는 2녀 1남을 두었다. 장녀 메리는 사진작가이자 사형제의 어머니로 살고 있으며, 차녀 [[스텔라 매카트니]]는 성공한 의류 디자이너다. 막내아들 제임스는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워낙 성공한 아버지를 둔 탓인지 크게 뜨지는 못하고 있다. 그럴만도 한게 아버지가 성공했다 정도가 아니라 세계 음악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전설의 그룹 비틀즈 출신이니... 본인도 유명세에 대한 욕심없이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듯.[* 아버지의 앨범인 [[Driving Rain]]에 공동작곡한 곡이 있다. 문서 참고.] [[파일:external/i.dailymail.co.uk/maccaDM1908_468x350.jpg]] 이후 2002년 헤더 밀즈[* 지뢰사고를 당해서 지뢰 해체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는 루머가 있지만 틀린 사실로 경찰 오토바이와 부딪혀서 왼쪽 발목 아래가 날아갔다. 현재 의족 착용 중. 하지만 지뢰를 반대하는 것은 사실이다.]라는 환경운동가와 재혼하였다. 그 이듬해에 늦둥이 딸을 보게 되는 등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나 이와 같은 시간이 지속되지 못하고 2007년에 결국 이혼하게 된다. 둘 사이에서 난 딸의 양육권은 조건부로 헤더 밀즈가 가져가게 되었다. 이혼시 헤더 밀즈는 엄청난 위자료를 챙겨 결국 돈을 보고 결혼했던게 아니냐는 여론의 뭇매를 받기도 하였는데, 헤더 밀즈는 몇 해 뒤 이걸 다 탕진했다고. [[파일:external/www2.pictures.zimbio.com/Sir+Paul+McCartney+soon+wife+Nancy+Shevell+ZhejPn38lk7l.jpg]] 그 후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것 같던 폴 매카트니는 19세 연하의 낸시 쉬벨을 만나 2011년 세번째 결혼을 했다. 헤더 밀즈와 달리 낸시 쉬벨은 미국의 유명한 자산가의 상속녀로 재산과 관련한 의심에서 벗어난 상태.[* 어차피 본인도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라 굳이 돈 보고 남자와 결혼할 이유가 없다.] 최근 폴 매카트니와 여러 매체에서 보여주는 훈훈한 모습으로 팬들에게도 호의적인 응원을 받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